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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한옥의 몽타주

병풍, 조각 난 풍경을 다시 합하기

한옥에는 창이 많지만 전면유리는 아니다. 막힘과 뚫림이 적절하게 교대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액자가 되는 곳은 뚫린 부분이니, 이는 액자가 여러 개 늘어서게 된다는 뜻이 된다. 뚫린 부분은 위치, 간격, 크기, 형태 등이 규칙적이기도 하고 불규칙적이기도 하다. 어쨌든 풍경작용은 여럿으로 조각난다. 대청 뒷면은 보통 두 장의 큰 창으로 이루어진다. 앞면의 기둥 열도 얼개로 짜인 개방 창으로 볼 경우 역시 창을 만든다. 기둥이 세 개면 창이 두 개, 네 개면 창이 세 개인 식이다. 방의 한쪽 면이 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창은 보통 두 개가 나지만 세 개 이상 나는 수도 있다. 창이 여럿인 장소 앞에 서서 조각난 작은 풍경들을 한 화면 안에 넣어서 볼 경우, 이것들은 다시 합해져 하나의 큰 풍경을 이룬다. 연작, 즉 병풍 개념이다.


회화에서의 병풍이라는 형식을 건축으로 구현한 한옥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창의 개수는 곧 병풍의 폭의 개수가 된다. 두 개면 두 폭 병풍, 세 개면 세 폭 병풍이다. 병풍은 좌우로 작은 풍경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뒤로 이어지는 중첩과는 또 다른 공간구도이다. 합해 보면, 종횡의 양 방향으로 연작이 일어나는 것이 된다. 그만큼 한옥의 공간구도가 풍부하고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맹사성 고택 액자가 다르기 때문에 두 장의 풍경도 다르게 나타나지만 풍경요소의 연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병풍을 이룬다.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옥에서 병풍을 만들어내는 기준은 분산성과 규칙성이다. 상반되는 조건인 두 기준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병풍 작용은 풍경요소가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분산성을 기본적 특징으로 갖는다. 너무 분산적이 되면 병풍으로 남기 어렵다. 분산성은 풍경요소들이 작은 장면들로 나누어지는 선까지 허용된다. 한 번 나눠진 다음에는 반대로 일정한 규칙성을 가져야 서로 어울려 하나의 큰 연작을 만들 수 있다. 규칙성의 조건은 연속성과 유사성이다. 너무 많이 떨어져도 안 되고 너무 달라도 안 된다.


맹사성 고택주석1 대청 뒷면을 보면 창 두 장이 위치는 동일한데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오른쪽 큰 창은 문짝이 반쯤 열려있다. 분산성도 느껴지나 전체 장면은 아직 병풍에 머문다. 좌우가 다른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창의 개수도 중요하다. 두 개면 병풍으로 느끼기에는 좀 부족하고 세 개면 안정적이다. 네 개면 확실하지만 한옥에서 한 번에 창이 네 개 연달아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 개인 경우는 많진 않지만 제법 있는 편이고 두 개가 제일 많다. 대청 앞면 기둥 열이 만드는 액자도 마찬가지다. 두 칸이 제일 많고 세 칸인 경우도 있다. 대청 양 옆 방 앞에 퇴가 나고 기둥이 세워지면 대청 위에 장소를 잘 잡을 경우 창이 네 개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몽타주, 조각 요소들이 어울려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다

어쨌든 두 개 이상의 조각 난 작은 풍경이 합해져 전체 풍경을 만들게 된다. 작은 풍경들 사이의 유사성은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이다. 많이 다르면 시각적으로는 합해질지 모르나 내용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채 단순 병렬에 머문다. 관가정 행랑채를 보면 완전히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병렬되어 있다. 왼쪽은 집의 일부분인 자경이고 오른쪽은 자연물인 차경이다. 두 장면은 이질성이 커서 둘을 합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창의 액자형식에 분산성이 없기 때문에 콜라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단순 병렬로서 병풍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연요소와 인공요소 사이의 병렬을 통한 종합화 작용이다.



관가정 액자는 같지만 풍경요소가 다르다. 풍경작용의 형식은 단순병렬인데, 이것을 대립으로 볼지 어울림으로 볼지는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다.



유사성을 가지면 이어 붙여 큰 스토리를 꾸밀 수 있다. 몽타주이다. 조각 난 풍경요소를 하나씩만 보면 집의 일부분만 보인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같은 집의 일부분인 점에서 유사성도 크다. 이런 요소들이 조각 난 상태로 병렬되어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조각 난 부분의 나머지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복원하게 된다. 완성된 큰 전체를 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몽타주는 반드시 창이 여럿으로 조각 나야 되는 것은 아니다. 액자가 하나이더라도 그 속에 담기는 풍경요소가 조각 나 있고, 이것이 관찰자의 머릿속에 전체 모습에 대한 상상작용을 유발하면 몽타주가 된다. 오죽헌을 보면, 왼쪽 조각은 지붕, 회벽, 기둥과 보 등을, 오른쪽 조각은 가지런한 서까래를 각각 조형 요소로 내놓는다. 왼쪽 조각에서는 지붕 끄트머리를 보고 나머지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기둥과 보가 지나가며 분할하는 회벽을 보고 벽체 나머지 부분에 난 창 등 역시 몸통의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오른쪽 조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을 모두 모아 이어 붙이면 집의 전모를 추측에 의해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몽타주 작용이다.



몽타주, 집과 친해지기 위해 기교를 부리다

그렇다면 왜 한옥은 몽타주 작용이 일어나도록 지었을까. 병풍 작용부터 먼저 생각해보자. 회화에서 병풍은 기본적으로 보관과 이동의 편리함 때문에 만든 것이다. 큰 그림을 접어서 보관하기 편하고 누각에서 연회가 벌어질 때 들고 가서 뒤 배경으로 펼쳐놓기에 편하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다. 다양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조형의식과 국민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정여창 고택 두 장의 풍경이 끊긴 뒤 이어진다. 중간에 가려진 부분에 대해 상상작용을 유발하면서 몽타주 작용이 일어난다.

 


큰 것 하나보다는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눈 뒤 그것들 사이의 합종연횡에서 나오는 다양한 관계를 즐기는 국민성이다. 이것이 자칫 혼란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성을 담보한 것이 한옥에서의 병풍 작용이다. 한국 특유의 균형감각을 잘 보여주는 현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용이라는 동양의 미덕을 바탕에 갖는다.

 

중용의 균형감각은 집과 사람 사이에 더 적극적으로 적용된다. 집과 친해지기 위해 몽타주라는 기교적 조형형식을 가했다는 것이 해답이다. 집이 단독으로 통째로 존재하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형식적이 된다. 주체로서의 사람과 객체로서의 주변 환경으로 양분되면서 이항대립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집과 친해지거나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겨루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객체화된 대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람이건 자연이건 집이건 상관없이 겨루어 이기고 싶어 한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생존본능으로서의 경쟁심이나 우월본능이다.


사람과 집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면 일상생활이 피곤해진다. 사람은 집에 욕심을 싣는다. 집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결국 집을 사람에게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객체와 싸워 이겨 굴복시키는 목적은 하나,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지배욕, 물욕, 권력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집도 이런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전제문명 시대에는 집이 사람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 버는 수단이 된다. 집은 온전한 개체가 되지 못하고 끝까지 수단과 도구로만 남는다.


집과 사람은 대등한 영향관계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작용도 고스란히 받게 되어 있다. 집을 잘 대해주면 집으로부터 복을 되돌려 받지만 잘못 대하면 그 대가를 치러 저주를 받아 불행해진다. 너무 쉽고 당연한, 그렇기에 지엄한 세상의 기초 이치이다. 집에 정성을 쏟고 집과 친해져서 한 몸 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면 집은 사람에게 더할 수 없이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만들어준다. 몽타주는 집에 다양한 놀이기능을 부여해서 집과 친해지고 하나가 되기 위한 고도의 주거 전략인 것이다.


 

오죽헌 액자는 하나인데 풍경요소가 둘로 나눠져 몽타주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좌우 양쪽 옆의 나머지 모습을 상상으로 복원시켜 이어 붙여 하나의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싶어진다.




  1.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맹사성(孟思誠)이 살던 가옥. 고려 말의 무신 최영이 지은 집으로 그의 손자사위인 맹사성의 부친이 물려받아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ㄷ자 형태의 가옥으로 마당에는 맹사성이 심은 600여 년 이상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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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8:04 2010/05/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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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큰 집에 살래
어느 날 문득, 창문을 발견하다

빛과 바람과 풍경을 담아내면서 그 자체로도 풍경이 되는 ‘창’ 이야기

▣ 김주원 이몽기가 대표

영화 <레옹>에서 킬러의 인상적인 습관은 하루에 우유를 2ℓ씩 마시는 것, 그리고 어디를 가든 키우는 베고니아 화분 하나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방에 들어가면 킬러는 잎이 무성한 그 화분을 먼저 볕이 잘 드는 창턱에 두고, 창문을 활짝 열어 잎사귀들이 햇살과 바람을 맞이하도록 한다. 그 창가에 놓인 채 바람에 흔들리는 베고니아 화분은 순간 킬러의 온 방 안을 평화로운 서정으로 가득 채우는 마법 같은 힘을 가졌다.


△ 집안 공기가 답답해 창문을 열다가 문득 창문을 발견했다. 볕과 바람과 풍경을 들여놓는 창문이 있어 숨통이 트인다.

사방에 벽을 쌓아 공간을 만들고, 지붕을 덮어 비를 피하고, 문과 창문을 내면 집이다. 무릇 좋은 집이란 비 안 새고, 볕 바르고, 바람 잘 통하는 집이다. 여기에 창밖으로 좋은 경치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다른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조건을 두루 갖춘 좋은 집을 가졌다면 축복이다. 이런 축복을 받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창의 속성이다. 창은 이 모든 것에 관계하고 있다.

마주 보는 창으로 건물이 숨을 쉬다

창을 내는 방향과 크기, 형식은 햇볕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를 결정한다. 동쪽으로 난 창은 아침 햇살이 들어 실내를 청명한 기운으로 가득하게 하고, 남쪽으로 난 창은 하루 종일 다사로운 햇살을 받아들여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다. 반면 서쪽 창은 오후 깊은 햇살을 실내로 끌어들이므로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주거 공간에서 꺼리는 방향이다. 하지만 으레 동쪽에 제단이 놓이는 서양의 성당은 출입문이 서쪽으로 나고, 서쪽의 커다란 원형 색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깊은 햇살은 해질 무렵 성당 안 공간을 장엄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람 잘 통하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이 마주 보게 해 바람길을 터주어야 한다. 한옥의 구조에서 대청마루는 대표적인 여름 공간인데, 앞뒤로 팡팡 터진데다 깊은 처마가 그늘을 만들어 에어컨 없이도 서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친환경적,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한 집이다. ‘병든 건물 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밀폐된 건물에 장기간 거주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두통, 메스꺼움, 피부 트러블, 무기력 등을 총칭하는 것이다. 온도와 습도, 공기청정도 등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제어된, 따라서 이론적으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그 속에 거주하는 사람은 이유 모를 이런저런 불편함을 호소하곤 한다. 이제 초고층 오피스 건물의 설계 주제는 어떻게 하면 바람 한 점 새지 않는 기밀한 공간을 만들어 완벽하게 환경을 제어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연 에너지를 건강하게 순환시키는 숨쉬는 유기체와 같은 건물을 만들까로 바뀌었다. 여기에 최첨단 과학기술이 가세해 빛과 바람, 물의 순환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는다.

로마에 있는 판테온은 직경 42m짜리 원형 바닥에 같은 높이의 공모양으로 생긴 신전인데, 구의 정점에 원형 창이 나 있다. 지금처럼 유리로 막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하늘로 뻥 뚫린 적지 않은 구멍으로는 빗방울 하나 새지 않는다. 이유는 위로 상승하는 더운 공기가 원형 창을 통해 외부로 흐르는 기류를 형성해, 이것이 빗방울을 막아주기 때문이란다. 창이 건물의 형태와 적절히 맞아떨어질 때, 건물은 창을 통해 숨을 쉬고 건강해진다.

옆으로 긴 창이 담는 풍경 파노라마


△ 옆으로 긴 창은 풍경의 파노라마를 선물한다(맨 위). 창문 아래에 놓인 티테이블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인테리어다(가운데). 벽을 뚫지 않고 지붕을 얹어 만드는 창이야말로 매력적이다(위).

좋은 경치가 있다면 창은 그림 같은 경치를 담는 액자가 된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풍경도 그것을 어떤 액자에 담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썩 달라진다. 좋은 경치에 통창으로 크게 난 창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작은 면적의 창으로도 드라마틱하게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태양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발표한 ‘근대건축 5원칙’ 중에는 ‘수평으로 긴 띠창’이 들어 있다. 상하 폭이 좁고 수평으로 긴 띠창은 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어, 평범한 경치라도 이 창을 통해 보면 근사해 보이는 마력을 가졌다. 한편, 가로 폭이 좁고 수직으로 긴 띠창은 풍경의 찰나를 담을 수 있어 짜릿한 맛을 준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 마지막 관문 통과의 유일한 힌트는 ‘신 앞에 겸손하라’라는 말이 적힌 쪽지 하나다. 순간 번득이는 것은 몸을 낮추라는 메시지. 덕분에 낮게 엎드린 몸 위로 지나가는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창은 시선을 이끈다. 끝없는 복도, 허리 높이로 뚫린 창은 시선을 얌전하게 내리깔게 만든다. 공간은 절로 경건해진다.

창밖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면 곤란한 서재라면, 좋은 풍경과 정신 집중 두 가지를 다 취하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창을 내어야 할 것이다. 눈을 들어 바깥 풍경을 볼 것이 아니라, 책상 위를 바라보는 시선 각도에 맞춰 낮게 창문을 낸다면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빛과 바람, 정돈된 풍경까지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기다림과 소통의 근사한 표현

창은 실내에서 보면 풍경을 담은 액자지만, 거리에서 보면 창의 모양이 곧 풍경이다. 특히 창은 환경을 조절하는 장치인지라, 환경이 다른 곳에서는 창의 모양이 달라진다. 그래서 창은 독특한 지역색을 띠는 경우가 많고, 그것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햇살이 뜨거운 지중해 연안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두터운 흰색 벽에 작은 창문이 깊은 그림자 속에 나 있고, 거기에 파란색 덧문이 달리고 창문을 장식하는 꽃나무가 심어진 화분이 있기가 쉽다. 푸른 지중해와 함께 이것은 한폭의 그림이 된다. 눈이 많이 오는 추운 스위스 산악지역이라면 경사가 심한 뾰족 지붕에 육중한 덧문이 달린 창문이 난 다락방이 있을 것이고, 열대지역의 목조주택이라면 벽과 창문의 구분이 모호한, 모두 창문처럼 열려질 수 있는 벽들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을 터이다. 창은 그대로 풍경의 일부를 이룬다.

많은 구혼자들은 창 밑에서 연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고, 피터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간 웬디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은 늘 열려진 창문으로 표현됐다. 창은 기다림과 소망을 담으며 가꾸어진다. 창가에는 곧잘 화분이 놓이며, 넓은 창턱이라면 크고 작은 액자들로 장식되곤 한다. 네덜란드의 어느 노인 집합 주거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1층에 있는 도로에 면한 복도를 따라 작은 창들이 나 있는데, 어느 집 창턱에 귀여운 노부부 인형 한 쌍이 얼굴이 복도를 향하도록 놓여져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잠시 그 인형의 주인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창밖을 바라보는 인형에 담겨진 그들의 기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침실은 창문을 자유로이 개폐할 수 있는 방이라고 굳게 믿는다. 내가 원할 때, 빛과 소리를 자유롭게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달린 창. 내가 원할 때, 세상으로 통하는 출구를 닫고 내 안으로 숨어들 수 있는 그런 침실을 만들기 위해서 첫 번째 할 일은 창에 유리문 이외에 별도의 덧문 혹은 차양 장치를 다는 일이다. 방을 점유하는 일이 훨씬 근사해질 것이다.

문이 몸이 드나드는 곳이라면 창은 시선이 넘나드는, 따라서 마음이 넘나드는 곳이다. 창이 없는 집을 그리는 아이는 마음이 닫혀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가난한 화가 존시는 창밖의 담쟁이덩굴을 바라보며 저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이웃에 사는 친절한 노화가는 창밖 벽에 담쟁이 잎을 그려넣어 희망을 불어넣는다. 몸을 움질일 수 없는 사람도 창을 통해, 창밖 풍경을 통해 마음을 실어나른다. 창밖 담쟁이를 바라보는 존시에게 창은 세상과 소통하는 마지막 통로였던 셈이다. 오늘날,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통로인 컴퓨터의 대표 운영체제(OS) 프로그램의 이름이 ‘윈도’(windows)인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벽을 뚫지 않고 지붕을 올려보면

얼마 전 안동에 갔다가 병산서원에 들러 만대루에 올라앉았다.

오로지 기둥과 지붕만이 있는 누마루 형식의 공간인데, 수평으로 긴 띠창이 주변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병산이 앞을 가로막았으되 오히려 내가 앉은 만대루 안으로는 병산 너머의 세상까지 모두 끌려오는 듯하니, 기이한 일이지 뭔가. 그래 곰곰이 어떤 공간 작용이 이곳을 이렇게 호방하게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병산을 코앞에 맞닥뜨려 집을 짓는다면, 옆으로 길게 뻗을 테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날개 아래 세상을 다 품는다. 벽을 뚫어 창을 만드는 줄 알았더니, 지붕을 얹어 창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 줄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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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bloom | 2007/09/09 00:17 | 집요함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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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10:36 2009/01/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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